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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17 21:26
시작 45> 석향 버리기(2) _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라.
 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12,029  
이말을 언제부터 들었을까.
참 많은 시간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이제와 들어도 멋진 슬러건이라 생각한다.
 
전쟁을 통과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하는 말이라면 이 얼마나 멋진 슬로건인가,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의 피를 통해 그리고 많은 나라의 도움을 통해 얻은 이 시간 이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라는 요구는 정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같이 전쟁의 세대를 겪지 않은 나와 젊은이 그리고 우리의 자식의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평화시대'가 그냥 온것이 아님을 늘 말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순간 석00목사는 왜 이런 메세지를 만들고 던졌을까 계속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석향버리기(1)의 목적, 수단에 관련하여 생각하기 전에 이미 떠올랐던 슬로건이다. 그렇지만 쉽게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어찌보면 맞는 말인 것 같고 어찌보면 틀린 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1. 우리는 평화시대를 살고 있는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평화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매일같이 치열하게 죄와의 싸움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과거의 시대보다 더 교묘한 죄의 발전(?)과 찌절한 신학에 뒤덮혀 갈팡질팡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폐쇄적 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참뜻을  버리고 서로 다른 주장안에서 배척하며 자신의 성을 쌓고 있는 현실임에도 평화시대라고 말한다면 잘못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서론에서 말한 것 처럼 전쟁의 세대가 아니어서 '편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통칭아래서 본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불신의 가정에서 제사의 문제로 타툼을 하던 세대를 지났고 후배나 동기들 역시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몰매 맞듯 맞고서 피멍을 자랑했던 일도 있긴 했었다. 그뿐이랴 군대에서 술잔을 거부해서 밤새 얼차려를 받기도 했고 이유없이 종교행사 참여_주일예배에 다녀 오는 것_로 인해 맞는 일은 다반사였다. 지금이야 '종교의 자유' 보장이나 이에 따른 근거가 뒷받침 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보고 평화시대라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계기가 됨을 설교자가 보지 못했을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러나 저러나 평화시대라고 단언하기에는 앞뒤가 안맞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설교자는 이런 죄의 무덤덤함이나 시대적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를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예전에는 평화에 반대가 되는 시대였고 어느 순간부터 평화의 시대를 산다고 설교자가 말했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정말 이 세대를 바로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인간세상의 부폐함은 갈수록 더 해짐을 경고하고 있는데 설교자는 평화시대라는 슬로건을 이 시대에 던진 것이다.
 
2. 값을 해라.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이 값이 무엇이던간에 이 값을 받기위해 평화시대를 선언했다고 본다.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말은 이 '값'이다. 요구이다. 이 요구에 정당화를 위한 전제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거부감 없이 누구나 이해하면서 값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하게 만들면서도 거기에 거리낌없이 갖다 붙여도 손색없는 말이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그래야 '값'의 의미는 축소되고 요구의 전제가 충족되어 누구도 '값'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졸하게 만든 신학을 엮어 넣는다면 정말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Text를 찾아 넣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평화시대'라고 선언했고 그에 따른
'값'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의 가설이 좀 엉성해도 그럴싸한 말이 아닌가 싶다.
평화시대를 사니 그 값을 해라. 예전에 우리 복음의 선조들이 신앙의 터를 세웠으니 그리고 그 터에 순교의 피를 뿌렸으니 우리는 그 전통에 따라 이제 그 값을 해야 한다. 누가 이 '값'에 대해 토를 달고 변론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은혜는 갚없이 받았다고 설교하면서 평화시대라는 테두리안에 가둬두고 그 값을 하라고 설교자가 외치는 것이다. 나는 신학적으로 잘 모른다. 그러나 이제 벗어나 눈 비늘이 벗겨지고 보니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자주자주 드는 것이다.
 
값을 해라. 헌금해라. 봉사해라,
신앙생활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장립집사는 천만원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신앙의 본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장로는 삼천만원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해야 한다. 값을 해야 한다. 주님 우리가 이 평화시대를 살면서 값을 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저분은 갚없이 거져받은 그 은혜를 중간에서 도매로 받아서 다시 값을 받고 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십원짜리 백원짜리 천원짜리 운운하며 외쳐대던 그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평화시대를 사는 값을 하라'는 이상 야릇한 '보속주의'를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어는 장로님의 고백처럼 자신의 사는 집이 좋고 하나님의 성전은 회칠한 무덤같아 건축헌금을 드렸다고 했던 고백이 들려온다. 바로 그 목사가 설교하는 내용이다. '교회중심'이라고 붙여놓고 교회가 잘되야 한다. 늘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설교하지 않았던가. 양들의 털로도 모자라 그 가죽까지 벗기고야 마는 목자를 어느 양이 따르겠는가. 피고름 나는 양을 보듬기는 커녕 오히려 진밖으로 밀어버리고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목자를 어느 양이 따르겠는가. 아니 떨어진 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까지 하는 그 목자가 과연 목자겠는가.
 
이 일이 어찌 한 교회만의 문제이겠는가.
한국교회가 더러운 슬로건을 만들고 거기에 몇구절의 말씀을 넣고 이왕이면 걸쭉하게 신학교리를 가져다 믹스해준다면 이 얼마나 보기 좋은 그림이 나오는가. 이는 마치 보리 두어 움큼과 두어 조각의 떡을 위해 거짓 말을 지어 '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설교했던 구약시대의 거짓 선지자을 답습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통찰력은 사라지고 죄된 인생을 회개케하는 말씀의 능력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정말 갚없이 만들어 버린 존재가 아니냐는 말이다.
 
주님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참회의 신자가 일어나도록 신자들이 무릎꿇는 곳에 역사하소서. 말 지어내기 대장들, 거짓말 쟁이 대장들, 남에게 텀탱이 씌우기 대장들, 패걸이를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실로암 망대가 넘어져 깔려죽은 18명의 사람이 우리보다 악하지 않음을 알고 회개하게 하소서. 아멘 
 
 

무너진성벽… 14-03-18 18:05
 
공감합니다. 석향교회는 지금이 평화시대라고 하면서 북한선교를 외면했습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평화시대라고 하면서 시대와 민족과 사회를 향한 고민을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대정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평화시대라고 하면서 놀고 먹고 복받는대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석향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어디 놀러간것 어디 좋은 곳 간 것 좋은 여행한 것을 자랑하더군요..
석향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자기 자랑에 바쁘고 이 시대를 향한 사명에 대한 고민은 없더군요..

석향인은 앵무새입니다. 석향의 우두머리는 앵벌이구요..
20세기는 한국교회의 부흥이 중요한 시기였으나
21세기는 한국교회의 부흥 보다 시급한 것은 한국교회의 회개운동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난 경향교회는 한국교회 회개운동을 사명으로 알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개혁경향 14-03-25 20:53
 
그래서 새롭게 거듭난 고려경향교회에 기대가 큽니다.

석씨들은 꿈도 못꿔본 위대하고 존귀한 일을 감당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