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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1 21:14
[필독]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여호수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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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다시새롭게
조회 : 1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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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여호수아 3:1-6]
-목욕탕에 앉아 있는다고 때가 벗겨지지 않는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수동적인 신앙생활이십니까? 아니면 능동적인 신앙생활입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복할 땅인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복하고 변화시켜 할 땅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성결케 할 때 우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어떻게 성결케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 스스로 성결케 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수 3:5)
오늘 본문인 여호수아 3장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3장 5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증스러운 물건을 제해 버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명령입니다. 더러운 모습으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모습으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깐 저의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S.F.C.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고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자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하나님보다 더 좋아했던 것을 다 버렸습니다. 제 책상 서랍을 다 뒤집어엎어서 락 음악, 강수지, 최진실 등 연예인 사진 등을 다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하나님을 만나니 회개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의 죄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영적 우상 숭배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위로와 만족을 세상으로부터 받으려고 했던 어리석은 시도들을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위로를 사람에게 받으려 한다거나 세상의 것 등으로 위로를 삼고자 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석가상이나 돌 상 등 그런 것만 우상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그런 우상 숭배의 더러운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항상 말씀과 기도로 살피고 항상 성결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성결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지은 다른 사람도 성결케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공동체가 함께 심판받게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에서는 승리하였지만 힘없는 작은 아이 성에서는 아간의 죄로 인하여 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한 사람의 죄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영적 전쟁에서 패하게 되지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고, 또한 주위의 형제자매를 살피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서로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수 7:13)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인 가나안 사람들의 물건을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아간이 몰래 가나안 사람들의 물건을 취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아간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여호수아 공동체가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시름에 빠져 있는 공동체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라는 명령을 주셨고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한 요인을 색출하여 그 죄를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의 죄가 교회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죄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주위 사람들이 더 문제 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함께 붙잡아 주고 함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세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서로 꽉 달라붙어서 하나 되어 기도할 때 마귀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동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숙사 안에서 어떤 친구가 100만 원이 넘는 노트북 컴퓨터를 잃어버렸고 서로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2000년도에 노트북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은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서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이 싫었고 화기애애해야 할 기숙사 분위기가 냉랭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곳에서 도난 사고가 났다는 것에 학생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시작한 한동대학교에서 이런 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질까 봐 저는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 하다가 오늘의 구절을 우연치 않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의 수동적인 신앙생활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죄가 많고 회개하지 않고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교회를 다닌다고 성결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내가 내일 기적을 행하리라"는 말씀이 머리를 강타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선입견과 편견을 깨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기사를 행하리라"는 내용으로 대자보를 제가 작성했습니다. 도난 사고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사람들이 낮에는 많이 다니지만 밤에는 많이 안 다니는 학교 길목에 박스를 놓고 "노트북 컴퓨터와 분실물들을 돌려 주세요"라고 종이에 인쇄해서 붙여 놓았습니다. 혹여나 노트북을 훔쳐 간 친구가 밤에 다시 가져다 놓으리라 생각했기에 제가 친절하게도 그 친구의 신원을 감추면서도 물건을 돌려 놓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한동대에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자신의 신분을 숨길 수 있고 박스에 밤에 사람들이 한적할 때 노트북을 넣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한순간의 실수로 후회하고 있을 그 노트북을 가져간 친구의 영혼을 생각할 때 안타까워서 하나님게 지혜를 구해서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신기하게도 그 다음 날 갔더니 실망스럽게도 노트북은 없고 분실되었다던 지갑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실망하지? 잃어버린 물건은 그 주인에게는 다 그만큼 소중한 것인데 '비싼 노트북이 안 돌아오고 겨우 지갑 하나만 돌아왔나' 저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물질에 사로잡힌 생각을 하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지갑을 찾은 친구가 기뻐할 때 저는 이 일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학교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잃어버린 노트북을 한동대학교 안에 있는 대학교회 본당 안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노트북을 훔쳐간 친구가 하나님께 나와 회개하고 그 노트북을 교회 안에 있는 좌석에 놓고 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제가 그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신앙생활이 아닌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동대학교 공동체 안에서 성결치 못한 행동들이 일어났을 때 조금이나마 저의 기도와 노력으로 서로 회복되고 거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일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를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도구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목욕탕에 다 가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목욕탕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몸이 닦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주여~~, 저를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백날 기도해도, 내가 때를 밀기 전에는 절대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내가 때를 밀 힘이 없어 팔이 짧아 닿지 않는 곳이 있다면 때밀이 아저씨한테 밀어 달라고 하면 됩니다. 또한 때를 잘 밀기 위해서는 뜨겁지만 고통스럽지만 열탕에 들어가서 때를 불려야 하고 때를 목욕 수건으로 밀어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했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옷을 벗어야지 씻을 수 있습니다. 가식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벌거벗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거추장스러운 형식적인 옷을 입고 있으면 안 됩니다. 체면 차리면 안 됩니다.
목욕탕에 얼마나 자주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만 번 목욕탕에 가더라도 자기 스스로 깨끗케 하지 않으면 깨끗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헌신하지 않고 교회에 오면 저절로 깨끗케 정결케 성결케 되리라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타성에 젖어 있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새로 지은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가서 구경만 하고 목욕은 안 하고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눈만 즐기다가 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친구 만나고 그렇게 헤어진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우리들의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자녀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신앙관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교회의 안 좋은 점보다 좋은 점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안 좋은 점을 비판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보려고 하고 닮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까 말씀드린 목욕탕 비유처럼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은 그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신자가 아니라 성도가 아니라 교인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종교인으로서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아이들은 언젠가는 교회만 빠지지만 않으면 저절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이 좋아지리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들께서 자녀의 신앙생활에 대해 가만히 손을 놓고 계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기를 빨리 앞당길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자립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생활 열심히 한다고 아이들도 덤으로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져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아도 자신의 방 안에 세상적인 것이 가득하다면 말씀의 씨앗이 그런 가시밭과 돌짝 밭 같은 곳에서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을 찬양하는 음악! 살인을 조장하는 음악! 게임! 음란을 조장하는 것들이 방 안에 가득하다면, 서랍 속에 가득하다면 그들의 영혼을 좀 먹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가 전에 즐기던 세상일과 오락을 더 이상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수많은 세상의 정신적인 오염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만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물 달라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샘을 파야 합니다. 이삭처럼 말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기고 또 뺏겨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샘을 팔 때 하나님이 형통케 하셔서 우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땀을 흘리면서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불로소득은 없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부흥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하라고 자꾸만 말씀하시는데 내가 억누르고 있는 것이나 거절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억누르지 않기 원합니다.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기 원합니다.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윤천수 목사
[이 게시물은 개혁주의님에 의해 2013-12-22 11:46:07 개혁의말씀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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