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저것 다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걸 막는 사람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원하는 걸 갖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저들에게 할배나 그아들은 용서의 대상이 되나 봅니다. 그렇지만 떠나는 사람에게는 '욕'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불의한 종을 향하여서는 끝임없는 용서를 외치면서도 교회를 나가는 친구들에게는 욕을 하는 그들을 보면 '아수라 백작'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사니, 김00도 그러고 판단이 안돼니, 바보 새끼들..병0 자식 잘 하라 해라,
' 00 나이처먹어 꼴 좋네, 개들보다 못한다, 벌받지 말라, ' 그러면서 친구라고 한다. 친구라 한다.
그렇게 말하면 친구 아니다. 친구인 척 하는 것이다. 진실이 없기에 그러는 것이다.
앞에서는 용서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욕을 쓰는 이중 인격의 모습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이 가진 것을 포장하며 좋게 보이려 애쓸수 있다.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은 그 포장을 보곤 '좋다'는 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막상 포장을 뜯고 그 안에 들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분노'함 밖에 없는 것이다. 저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포장이었기에 그 속에 '진실'이 없기에 사람들이 분노의 화살을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다. 누구 때문으로 만드는 설교, 누구 때문으로 몰고 가는 외침 그것이 지금 보기에 힘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포장만을 신경쓰다보면 결국은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진실을 어떻게 지금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용서라구요. 불의한 종이 강단에 서는 것을 용납하면 그 강단은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한 인간으로 왜 용서가 안되겠습니까. 백번이고 천번이고 용서하지요 그러나 그런 자들이 계속해서 강단에 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역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돌아가서 남은 여생 편히 사십시오. 돈도 있겠다 가진 것도 있겠다 무슨 이유로 여기 있습니까.
주어진 시간 가족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며 자신의 가정을 지키십시오. 그나마 있는 것도 그분께서 흔들고 있다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그나마 그것이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