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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3 11:56
시작 36> 타락의 요건이 갖추어지다!!!
 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29,351  
타락의 요건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타락은 죄를 범하여 불신의 생활에 빠지는 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를 돌아봐도 흠과 결이 가득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영을 보내사 수시로 죄를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는 영지작용을 합니다. 경종을 울려 각성하게 합니다. 이것이 영지작용입니다. 그런데 어떤 죄는 스스로를 속이도록 캡슐에 포장되어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 듭니다.
이렇게 모여진 캡슐속 죄는 어느 순간이 되어 나 스스로를 죄의 깊은 곳으로 잡아 당겨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죄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들여 내 마음의 보좌를 주님대신 나로 앉게하고 나는 죄의 종노릇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를 가르켜 타락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서를 읽고 지나간 531절의 말씀이 지난 밤 저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읽고 지나갔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서 돌아온 이 구절에 저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라고 정의 된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탈출한 그곳의 상황을 정리하며 정확하게 보여주며 그리고 결과까지 알려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한 구절에는 타락의 조건이 갖추어졌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이 바로 타락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뜻을 전달하는 그들의 본질적 직무가 변질되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 편에 서 있어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의 신앙적, 도덕적 타락에 경종을 울려야 할 목자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해야할 그 직무가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오늘 성경 말씀에 서두에 등장하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처음 보기에는 좋은 목자처럼 보였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된 목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목자에게 예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요 '내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겼다고'까지 했습니다.
 
저들은 58절 말씀에 그들은 살지고 정욕이 왕성한 숫말과 같이 되어서, 각기 이웃의 아내를 탐내어 울부짖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24절은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남자가 한번 실수라는 말은 성경 어디를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말입니다. 죄를 짖고 자신의 영지작용을 벗어 버리고 용서라는 캡슐에 숨겨 버린 것입니다. 회개라는 도구를 자신의 피난처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말씀의 권위에 자신이 앉아 버리는 배도의 모습을 취한 것입니다. 죄된 인간 심성과 야합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러면서 평강을 외쳤으며 돌아서서는 영적 부패를 묵인하는 일을 자행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30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다라고 그 상황을 이야기 했습니다. 세속의 물질적 풍요에 자신을 살찌우고 오히려 죄의 종노릇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지자의 거짓 예언은 이미 기울어진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을 어찌 필할 수 있겠습니까.
 
2.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제사장은 그 시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대표자였습니다. 백성을 위해 거룩한 일, 그중에서 속죄하는 일에 수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희생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는 백성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특권은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저들이 이 특권으로 다스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죄를 묵인하는 당회는 스스로가 어찌 세워졌는지를 망각해버렸습니다. 인간의 손에 의해 세워졌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렸던 것 입니다.  모든 일을 처리하는 특권 계층들을 우리는 그동안 봤습니다. 마치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둔갑하여 백성을 돌아보는 일을 하지 않고 권력으로 다스리는 일에 심취하였습니다. 비밀스럽게 마치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냥계급화하여 평신도를 억압하고 그 위에 군림한 것입니다. 종교적 특권 집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을 통하여 회원을 받는 사업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 섬기는 삶을 보여주신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것 하나 부합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배와 군림을 좇는 목사, 장로 그리고 특권 의식을 갖는 모두는 주님의 섬김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6:9절은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제 그렇게 군림했던 저들은 그들의 상전을 만날 것입니다. 그날에 셈하시는 그분이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그때서야 깨닫고 후회하나 그 후회는 문밖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3. 내 백성은 좋게 여기니
역시 죄는 공모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 예언이나 권력으로 다스리는 일들이 저들만의 잘못으로 타락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내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그것을 좋게 여기니라는 표현은 선지자들의 타락과 제사장들의 죄악을 백성들이 하등의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무엇이 내 백성, 그리스도인들, 신앙인들 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 들였습니까. 30절 말씀처럼 정말 무섭고 기이한 일이라고 밖에는 답을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저들이 오히려 지도자의 용서를 외치고 죄와 연합하는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추종함으로써 회생의 가망성 조차 상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과 관영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백성이 있던 곳이 이제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시는 뜻을 도무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라는 말씀을 가슴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같은 모양으로 기도하고 같은 모양으로 말씀듣고 같은 모양으로 봉사를 해도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받은 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고 타락의 길을 가고 그 타락의 길에 조건들이 맞아 질 때 그 공동체는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너희가 어찌하려냐묻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