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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4 15:51
시작 37> 석향 버리기(1) _ 목적으로 예수 수단으로 삶
 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15,139  
이 말은 참 멋진 말이었다.
 
.민 신앙고백서의 1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써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5대강령 처음으로 전적타락의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겁게 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그러나 칼빈의 교리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통해 구원 받은 성도가 그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예수지극히 맞는 말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사는 바울 역시 '오직 예수' 였고 종교개혁자 루터 역시 '오직 예수'였다. 성경은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다 주를 위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석향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서지 못했을까요. 그것이 단지 도덕적 문제’, ‘물질적 문제만으로 설명되는 일 인가요. 어떤 분들은 그런 문제를 제외하면 신학은 괜찮았다 다른 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라는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목적으로 예수 수단으로 삶이라는 말을 통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석향에선 이 말을 목적이 1이고 수단이 2라는 순위적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빨리 교회를 가기위해 교통위반 즘은 해도 된다.
많은 헌금을 위해 부정한 일은 좀 해도 된다.
헌금률을 높이기 위해 전도사를 경쟁시켜야 된다.
성경읽기 보고는 약간의 거짓말로 써도 된다.
구역은 안모여도 구역헌금 정도는 해줘야 한다.
안수집사는 지역적 안배를 고려해서 해줘야 한다.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세상법은 어겨서라도 해야한다.
평화시대를 사니 으로 그 값을 해야한다.
신앙은 좋은데 돈을 못낸다 그럼 신앙은 나쁜 것이다.
장로, 권사, 집사 돈으로 샀습니다.
심방을 받으면 심방비를 내야 합니다.
 
장로가 사기치고 도망갔습니다. 세상 법에 저촉을 받습니다, 집사가 사기사건에 연루됩니다. 혼전에 아이를 갖습니다, 낙태합니다, 주일에 직장 출근은 다반사입니다, 모임시 술이 오갑니다, 교역자의 거짓말은 이미 수준을 넘었습니다, 간식없는 주일학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전도의 목적은 사라진 체육활동은 그들만의 잔치입니다, 바람나 도망가는 사람, 버젓이 두집 살림을 사는 사람, 사문서 위조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들 끼리는 골프치러 다니고, 삼삼오오 모여 특권 그룹을 만들고, 교회 내에서는 매주 물건 사고 팔고, 한 쪽 룸에서는 방송 티비에 낄낄거리며 웃고 즐기고 무엇이 목적으로 예수고 무엇이 수단으로 삶입니까.
 
목적인 예수를 위해 소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하는 수단으로 삶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배운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 두 가지는 같은 높이, 같은 수준이라고 알면서도 그렇게 사용하지도 듣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알아야 할 것은 목적이나 수단이 모두 주님께 요구 받는 다는 것이다.
나를 섬겨라 어떻게 바로...
나를 섬겨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여러분은 어떤것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우리는 '바로'하는 일 때문에 이렇게 되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르지 않으며 목적으로 예수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화해하지 않고 예배드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했는데도 제사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수단을 약화시키고 목적만을 강조해버린 것입니다.
 
요시아 왕의 개혁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당시 멸망과 진멸을 외치던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아나돗(?)으로 돌아가 그 외침을 쉴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그 개혁은 왕이 죽고 그리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의지가 있었던 왕이 있던 시기에만 유지되었습니다. 왕이 죽자 얼마되지 않아 예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제사' 자체가 목적이 되었습니다. '수단'인 삶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지금 우리도 혹시 '예배'에 집중하는 이유가 수단으로 삶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석향의 잔재를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 한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철저하게 되돌아 봐야 합니다. 아니 소돔과 고모라로 여기고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배의 방법을 고민하고 모든 초점이 예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또다시 더러운 떡(1:7)’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눈 먼 희생제물, 병든 것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권으로 바꿔서 드리는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석향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말초적 자극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매일같이 잘못을 깨닫고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계속 성화되어가는 삶이 제사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중심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강렬히깨닫게 된 것 아닙니까.
 
시바의 유향도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도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않겠다. 하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석향은 이어지는 말씀에 이 백성 앞에 장애물을 두리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매일같이 보고 있지 않습니까. "내 백성의 혀는 독이 문은 화살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말 뿐이다, 입으로는 서로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에는 서로 해칠 생각을 품고 있다."
 
잘 드려진 예배, 실수하지 않은 예배 그리고 나올 때의 뿌듯함에 빠지지 맙시다.
예배중에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고 말씀으로 거듭남이 일어나고 통회와 자복으로 눈물이 쏟아지고 이웃과 갈등이 화해되는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을 먼저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수단의 삶을 가볍게 만들면 안됩니다. 목적과 수단 이것을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영리를 위해 사용했던 과거를 버립시다.
다시 말씀을 상고합시다. 맞는지 틀리는지 주님께 물어 봅시다.
 
 
 

DeJesus 14-02-14 16:40
 
'교회중심’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교회중심'이 무엇인지 강렬히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성도 한사람 한사람 그리스도의 지체요 몸된 교회의 구성원이니 교회중심을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동안 왜곡된 교회중심이라는 구호만을 외치고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하고 강론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려고 열심을 내는 모습을 우리 주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려경향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믿음의 자세를 더욱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복이고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주의 14-02-14 16:53
 
교회중심이라는 말은 쓰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에 따라 오해를 가져 올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있으면 그대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함축적의미로 해석되어 혼란이 있다면 피해야 합니다.
님께서 하신 말씀을 비춰봐도 '교회'의 의미를 성전에 둔것이 아니라 에클레시아, 즉 두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 곳을 의미함인줄 충분히 알겠습니다.
교회의 중심으로 배운 말씀이 수단으로 삶을 지배하고 그 삶에 나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비드 14-02-14 18:50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