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NEWS

우리는 신천지를 반대합니다. 해당글은 반드시 삭제됩니다.
 
작성일 : 14-02-17 00:44
시작38>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지 않았던 그곳은 어두운 곳이다.
 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5,812  
요즘들어 참 '용서'라는 말을 많이 듣는 적은 없는 것 같다.
심심하면 들려오는 소리가 '용서했다', '용서해줘야 한다' 등등의 소리이다.
툭하면 나타나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조금 지나고 나면 '불감증'이라도 걸린 것 처럼 이정도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는 것이다,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하면 둘다 똑 같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공의가 물처럼 흘렀는가 아니면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되었는가. 왜 자신들이 하나님 앞서 그것을 '베푸는 척'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말을 흘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말도 맞고 저말도 맞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우리는 그동안 공의와 정의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성경은 어디서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의나 공평은 '사법적 올바름'을 가리킨다. 룰을 지키지 않는 것, 반칙을 하는 것. 정당한 경기는 승자나 패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것이 공정한 룰에 의해 나오는 결과이기에 승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들은 공의나 공평을 실행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용서라는 단어를 들기전에 어떻게 공의롭게 처리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단 한번의 치리회도 없었다. 소위말하는 전권위원회도 없었다. 어떤 사과나 회개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회개했다고 말하는 것과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초범은 그 기회를 줘서 벌을 약하게 한다. 그리고 다음을 지켜보고 또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면 '가중처벌'이 되는 것이다.
 
그는 한번의 죄에서 끝나지 않고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한' 그 죄를 자주 자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소문'이라고 일축하고 이제는 아예 '없던 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들이 없으니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다.
 
'정의'는 '서로를 바르게 대하는 것'으로 해석을 한다. '서로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공의가 공정한 룰에 의한 경기를 비유한다면 서로 다른 조건의 선수가 룰로만 경기하기에는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말할 수 있다. 굳이 비유를 한다면 정상인과 장애우의 경기는 아무리 공정한 룰이 있다해도 뻔히 경기는 안될 것이다.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에게 지속적인 돌봄과 지원이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께서 선한 일(공의)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정의)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중심' 한다는 이야기로 획일화된 시스템에 갇혀 원하는대로 끌려다는 '종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부분은 숨긴 것이다. 충성된 일꾼이란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위하고 교회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교회가 힘들면 마음이 불편해지게 만들고 교회에 충성하지 못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둔것이다.
 
이제는 그만하여라 폭행과 탄압을 그치고 공평과 공의를 실행하라, 내 백성 착취하는 일을 멈추어라, 나주의 말이라고 하셨지만 세상보다 더 독하게 그들을 착취했던 것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은 낮은 기준으로 끌어 내려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했으면 또는 그것을 피해 가도록 했다. 그리고 천원짜리 신앙으로 양들을 몰아 누구의 말처럼 '피나게 털을 깍는'행위를 멈추지 않은 것이다.
당당하게 헌금을 요구할 정도는 '세리'보다 더한 것이었으며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까지 한 것이다.
 
어디에서도 공의와 정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여지지 않은 공의와 정의를 찾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붙잡고자 이리로 저리로 분주하게 다닐지라도 '밤'은 속히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말로 속이고 있다. 하와를 속이는 간교한 뱀의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봤나, 들었나, 증거가 무엇이냐, 이젠 되지 않았느냐, '나쁜 것'은 나쁜 것이다. 하물며 아이가 위험한 곳에 가면 '가지 말라고 '하는 부모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일에 '무감각'한 것을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는 것이다. 말씀으로 자신이 살고 죽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리도 '좋은게 좋지 않느냐', '들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는 말에 속는 것을 보면 우리가 있었던 곳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았던 곳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이제 공의와 정의가 바로 실현될 것이다. 선한 일을 기대하신 그분의 뜻을 따를 것이다. 옳은 일을 기대하셨기에 그 기대함에 부응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자신들을 개혁한 분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앞에 자신을 비추기 때문이다.

애기아빠 14-02-17 14:13
 
그들 입으로 김일성, 김정일 부자(父子)도 용서해 줘야 한다고 말하면 그때가서 용서를 고려해 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습니다. 하는 행동이 워낙 비슷하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