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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19 13:09
시작58> 시간이 지나면 묻혀지는 것이 세상 이치일지는 그것이 드러나고 심판받는 것도 세상 이치이다.
 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13,049  
이스라엘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에서 취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이 말씀은 아합이 죽음으로 가는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고 그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생각을 한다.
깊이 생각을 하기도 하고 몇일의 시간을 고민하기도 하고 또는 어딘가 숨겨두었던 비상금이 생각나듯 생각 나기도 한다.
 
아합은 아람의 벤하닷과의싸움에서 살려주는 조건으로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라고 하여 조약을 맺게 된다. 물론 이 전쟁을 이기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아합은 결과적으로 벤하닷을 살려주었고 그에 따른 성읍을 돌려 받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열상 20:42) 놓았고 그 결과로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43절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 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고 그 장은 마무리가 된다.
인생은 여러 경우에 경고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담배를 피는 사람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부주의한 운전 습관은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음주운전은 특히 자신 뿐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매우 악질적인 범죄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인생은 진리처럼 그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는 말들을 하고 경계로 삼기 마련이지만
실제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는 그저
1. 근심하고
2. 답답하여
우리의 삶터로 돌아가는 모습 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로보암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그에게 '다윗을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너라도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잘못에 대한 경고를 받게 된다.
그것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은 그런 경고를 받고도 어떻게 1년을 보냈는지가 중요하며 그 결실의 열매는 곧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서려는 눈물의 노력이 있다면 그런 심판은 유보될 것이다.
때론 그 심판이 거둬지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렇게 근심과 답답함 속에서도 '시간은 잘도 간다'
그 사이 그는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게 된다.
왕으로 가지고 싶은 것을 갖는 삶을 성경은 알려주면서 그가 그런 마음으로 살면서도 결코 자신을 돌아보거나
지난 하나님의 경고를 되새기며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는 곳 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취한 '나봇의 포도원'은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며 그 아내 '이세벨'의 극악함을 그대로 나타낸다.
어쩌면 이는 인류에게 죄를 '선물(?)'한 아담과 하와의 모습과 어쩌면 그리 닮아 있는지를 성경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핣은 곳에서 개들이 네 필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 정도라면 나와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일들을 그저 한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말 것인가 하는 말이다.
세상의 사람들도 '타산지석'하는 삶을 산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찌 대하는 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사건속에서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 는 아합의 행동에 하나님께서는
'겸비함을 인하여'라고 평가하시며 그 재앙을 물리셨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라면 우리는 '크라이막스'를 기대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개죽음과 그 인과응보를 기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22장으로 넘어가는 첫 구절이 바로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년을 지내었더라'는 사실이다.
평온의 시간에 유보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에
인생은 도대체 무엇을 할까...
 
우리의 개혁의 1년의 시간에
우리는 평온함을 찾는 듯한 이 시간에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대로 행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 평온의 시간에
예전 어쩌면 누구라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담당하던 이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아합에게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돌려받기로 했던 '길르앗 라못'을 생각나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1년의 시간을 보내고나서
우리는 각각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여진 아주 당연하듯 생각나는 '내 것', '내가 받기로 한 것'...
누가봐도 내 것이라고 한 그것에 대한 생각이 어느 곳으로 가는 지를 우리는 아주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 생각의 결과의 끝에 이 땅에서의 심판이 들어나는 것을 말이다.
도저히 피할 길 없는 그 길로 들어 서는 자리에
 
그저 '아합의 생각'이 작용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개혁의지 14-12-27 15:12
 
공감가네요.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저 그런 일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두렵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