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5 23:10
석ㅇ태원로 목사의 서울남노회 사면건은 노회의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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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개혁주의
조회 : 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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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가을 서울남노회는
경ㅇ교회 원로석ㅇ태목사의 사면건을 해임으로 처리하지 않고 당회장 석기현 목사의 요청에 따라
사면으로 처리하는 우를 범하였으나 이를 바로 잡지 않고 촬요에 기록하는 등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회정치문답 조례 330문에 목사의 사면은 해임으로 처리한다 되어 있다.
이는 원로라 하여 죽을 때까지 그 직을 놓을 일이 없음에도 사면을 요청한 건에 대해
그 죄가 밝히 드러남을 덮어주고자 해임으로 처리해야하는 것인데도 이를 시행하지 않음으로
죄가 없다하며 스스로 사면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나는 죄가 없으나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가 그런 법보다도 우선한다면 누가 그런 법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그 권위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가.
또한 상위 기관에서도 그 법의 유권해석을 해줌으로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오히려 상위 기관의 유권 해석도 따르려 하지 않는 서울남노회
이를 알면서도 당회장을 보필해야 할 경향교회의 당회는 오히려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당회원 일부는 총대이며 또 임원이다.
당회장 석ㅇ현 목사는 본인의 설교중
'교회를 통해 치리(治理)받게 되는 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해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라고
말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이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 본문을 읽고 알아서 판단하세요.
===================== 해당 설교 중 (고후 1:23~ ===========================
5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에 "5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근심하게 한 자"란 바로 바울이 보낸 '근심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가 권징을 실시한 교인들, 즉 범죄한 사실에 대하여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징계를 받게 된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 자들의 범죄는 비단 사도 바울만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는 말은, '내 말이 너무 심하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이런 정도로만 말한다.'는 뜻입니다.
즉 한 교인이 공적으로 범죄할 때 그것은 목회자에게 개인적 아픔도 되지만 그보다 공동체 전체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전 교회에 근심을 끼친 범죄자라고 해서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을 잊으면 또한 아니 된다고 사도 바울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라는 말에서 '많은 사람'이란 그와 같은 권징이 교회의 공권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해졌음을 가리키며, '족하다'라는 말은 그렇게 공적으로 징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 거기에 대하여 뒷말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저를 용서하고 위로해야" 할 때,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드러내어 처리해야 할 때가 있으면 이제 죄를 감싸고 덮어 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즉 벌할 때가 있으면 용서해 줄 때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아니하면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징은 교회의 진리와 순결을 지키기 위해 꼭 실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 목적 중에 하나가 '범죄자의 영적 유익을 도모함'인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범죄한 교인을 교회나 다른 성도들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권징의 목적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정죄하고 시벌하는 것만 칼같이 행할 줄 알고 진정 용서하고 위로하는 것을 잊어 먹으면, 그 권징 받은 교인은 완전히 낙심하고 신앙생활 그 자체를 포기하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공적으로 권징했으면 또한 공적으로 해벌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권징만으로서는 그 범죄한 영혼을 다시 회복시키는 힘은 결코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계속하여 9절부터 11절까지에 기록하기를 "9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고 했습니다.
그 '근심의 편지'를 써서 보낸 목적은 바로 바울의 책망에 순종하고 마땅히 교회에서 행하여야 할 권징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그 범죄자들을 권징함으로써 그런 바울의 판단에 동의하고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권징 순서에 '용서'가 꼭 따라가야 할 것을 바울이 그들에게 주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란 말은, 고린도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용서한 사실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 역시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른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지교회의 관할과 치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이든지 장로이든지 평신도이든지 간에 그처럼 교회의 치리를 따르는 자세야말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모시고 있는 한 성도로서 지극히 당연한 자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그처럼 반드시 용서가 따르는 권징을 실시해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덧붙이면서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교회가 권징하지 않은 교인을 사용해서 교회를 제 마음대로 망쳐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교회가 권징 후에 용서하지 않은 교인 역시 사단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 진정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권징은 사단이 성도 화목을 이간질시키고 교회 화평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역이용해서 써먹을 수 있습니다.
사단은 적어도 그 정도로 교활하다는 사실을 신자와 교회는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적어도 신자와 교회는 그런 사단이 꾀하는 수작을 빠삭하게 꿰뚫어 보고 그 사단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 수 있을 정도로 영적 단수가 높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른 권징은 교회의 덕을 세우고 복음의 진리를 지킬 뿐 아니라, 범죄한 영혼에게도 유익함을 끼쳐 주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용서 없는 권징은 교회 안에 아물어질 길이 없는 많은 상처들만 만들어 나갈 뿐이지만, 진정 한 영혼을 아끼는 마음으로 행하는 권징은 이처럼 사단의 교란작전을 분쇄하고 약한 영혼을 강하게, 병든 영혼을 회복시키는 치료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권징을 받게 될 때 교인은 그것이야말로 사실은 자신이 귀중히 여김을 받고 있으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증거인 줄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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