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라는 것이 또 다른 개혁꺼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013년의 뜨거웠던 겨울이 잊혀질 만큼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 같지만 그때 뿌려놓았던 각각의 씨앗은 자라서 빠른 수확을 하거나 아직 어떤 것들은 개갑조차 하지 않은 것도 있다.
한 교회가 두 교회로 나눠지고 한 교단이 두 교단으로 나눠지고 그런 한 교단은 다시 교단과 합하여졌다. 성도들은 헤어지고 싸우다가 다시 친한 척하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한다.
각자의 길에 들어선 이들은 같은 시간에 각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서로를 감시아닌 감시를 한다. 잘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넘어지면 ‘거봐’하면서 비웃기도 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삼가 조심하지 않으면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이 땅과 천상의 법칙이다.
개혁의 주체라고 해서 다시 개혁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야 말로 개혁의 맛을 보았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더 확장해야하고
한편에서는 정당성을 확보해야하고
이해하고 본다면야 뭐 틀리겠는가마는 이는 엄연한 세상의 논리일 뿐이다.
더 확장하려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할 것이고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특별히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옳다는 정당성은 스스로가 만들 수 없는 것인데 어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런가 말이다.
그런 그들은 이미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등
또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과정조차 바로 세우지 못하는 방법으로
정당성을 세우려한다면 결국 자신들만 인정하는 의미없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잊혀진 시간을 연장하려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거쳐야 한다.
최근 위안부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보지 않는가?
그런 갈등은 이 땅의 우리에게는 비일비재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때 당신이 무슨 일을 한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